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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자료실/생각나눔방(4차)

자본주의 4.0 제3부 교육에 답이 있다] 중학교는 '교육 블랙홀'… 첨단산업 키울 천재 등장 막아

[6] 목표 모호한 중학교육… 방황과 단절의 시기로 전락
너무 일찍 묻히는 잠재력 - 많은 학생들, 공부에 흥미 잃어 일탈 늘고 성적 급격히 하락… 글로벌 인재 육성 큰 걸림돌
조기 진로교육 강화해야 - 적성·소질 계발 교육위해 특화된 프로그램 도입하고 학제 개편도 검토해봐야

지난해 딸을 중학교에 진학시킨 학부모 이모(42·서울 동작구)씨는 담임교사를 만나러 학교에 갔다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교사는 냉랭한 표정을 짓고는 "학원은 보내시나요? …성적 좀 신경 쓰셔야겠어요"라고만 했다. 이씨는 "마치 엄마가 알아서 다 하란 것처럼 들렸다"고 했다.

이씨는 그때부터 아이와 그 친구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학교가 그다지 열심히 공부를 시키거나 수업에 몰두하는 것도 아니었고, 생활지도 역시 소극적이었다. 특목고 진학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아니면 학습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독서 등 다른 활동에 몰입하는 것도 아니었다. 친구들과 몰려다니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아이도 있었다. 이씨는 "중학교에서 갑자기 교육이 멈춰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나라 중학교 교육과정이 문제투성이라는 지적이 많다. 중학교 3년이 마치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정체성·목적성이 뚜렷하지 않은 '단절의 시간'으로 허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성과 창의력 발달에 더없이 중요한 만 13~15세의 청소년기에 많은 중학생들이 일탈과 좌절, 창의성 상실을 겪으면서 중학교 교육과정이 인적자본 창출의 걸림돌이 되고 IT·바이오 분야 등 첨단 산업을 주도할 천재들의 등장을 막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중학교육의 실패

중학교가 이처럼 '인재 양성의 블랙홀'로 전락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학교의 교육 목표가 모호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한다.

교과부가 정한 교육과정을 보면 우리나라 초등학교는 '기초 능력 배양과 생활습관'을, 고등학교는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진로 개척능력 함양'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중학교 교육은 '학습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능력'이라는 애매한 목표를 지니고 있다. 기초과학 등 각 분야의 인재로 성장할 잠재력의 싹을 틔워야 하는 연령대의 학생들이 사실상 방치된 채 학교와 집을 왔다갔다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 과정이 별다른 목적 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잠자는 학생들로 가득한 서울시내 한 학교의 교실. /정경렬 기자 krchung @chosun.com
성적은 떨어지고 폭력은 늘어나

중학교 입학 뒤의 학업성적 역시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2008년 처음으로 시행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의 결과, 초등학교 6학년의 기초학력 미달(성취도 20% 미만) 학생의 비율은 2%대에 그쳤지만 중학교 3학년에서는 10.4%나 됐다. 지난해 학업성취도평가에서도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비율은 초등 6학년이 수학 1.2%, 영어 2.1%였으나, 중3에서는 각각 6.1%와 3.9%로 높아졌다.

공부에 뜻을 잃은 중학생들의 일탈 현상도 늘어나고 있다. 2008년 전국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가 학교폭력 사건을 심의한 건수는 중학교가 6089건으로 고등학교(2517건)의 2.4배나 됐다.

자본주의 4.0 이끌 인재 어려워

중학교 단계에서도 학생들의 적성과 소질을 계발하고 비전을 제시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독일의 경우 초등학교(4년제)를 졸업한 뒤 곧바로 적성과 재능에 따라 직업교육과 대학 진학 중 하나를 선택하기 때문에 교육 목표가 분명하다. '질풍노도 시기의 방황'을 겪을 여지가 좁아지는 것이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근본적으로는 현재 우리의 중학교 3년 과정을 북유럽처럼 초등교육의 연장으로 자리매김할 것인지, 영국·독일처럼 통합 중등교육 과정에 넣을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며 "새로운 자본주의 단계의 인재 양성을 위해 학제(學制) 개편의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