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유성(遊星)의 하나. 태양(太陽)과의 평균(平均) 거리(距離) 0.72 천문(天文) 단위(單位), 공전(公轉) 주기 225일, 직경(直徑)은 지구(地球)의 0.937배, 질량(質量)은 0.82배. 저녁 서쪽 하늘에 보일 때에는 장경성(長庚星), 개밥바라기. 새벽에 동쪽 하늘에 보일 때에는 계명성(鷄鳴聲), 샛별이라 일컬음
[출처: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 말 풀이사전]
별
개밥바라기
늑대별
닻별
무저울
미리내
별똥별
붙박이별
살별
살차다
샛별
싸라기별
어둠별
여우별
잔별
저울자리
짚신할아버지
(어원)개밥바라기 : 저녁에 서쪽 하늘에 보이는 금성(金星).
지구의 바로 안쪽에서 태양의 주의를 도는 행성을 금성(金星)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별이 초저녁 하늘에 비치면 장경성(長庚星), 태백성(太白星), 개밥바라기 등의 이름으로 부르고, 새벽 하늘에 보이면 샛별, 명성(明星) 또는 계명성(啓明星)이라고 부른다. 샛별이 새벽녘 동쪽 하늘에 나타나는 별이라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면 , 개밥바라기는 저녁에 개가 배가 고파서 저녁밥을 바랄 무렵에 서쪽 하늘에 잘 보인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그가 손가락으로 저물어버린 서쪽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 개밥바라기 보이지? 비어 있는 서쪽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밝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잘 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리기. 나는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황석영의 소설, “개밥바리기 별” 중에서)
어릴 적 별명 한두 개 쯤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여러 별명을 달고 살았다. 그 중에는 우쭐하게 만들어주는 매우 고상한 것도 있었지만 대개는 우습고 때로는 수치스러운 것들이었다. 어린 시절 아이들이 놀릴 때마다 불러주는 별명들은 우리들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 돌이켜보면 다 정다운 것들인데 왜 그 때는 그렇게 아팠을까?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그 별명들이 어쩜 우리 자신들을 너무도 잘 묘사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매우 친근하고 소중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별명은 감추고 싶은 우리의 자화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별명들은 어쩜 우리가 가진 특징들을 그렇게도 잘 묘사해 주고 있었는지 참으로 야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존재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서서히 알게 되자 그 별명 앞에 당당해 지기 시작했다. 인식의 범주가 존재의 현상에서 존재의 의미로 전환되면서부터 그 여유를 갖게 되었다고나 할까! 내 존재의 본질을 찾아 가기 시작하면서 수치스럽던 별명도 예쁘고 소중해지게 되었다.
개밥바리기별도 그렇다. 황석영은 1960년대에 함께 남도를 떠돌던 삼십대의 부랑노동자로부터 이 별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던 초저녁에 서쪽 하늘에 떠오르는 밝은 별이 하나 있다. 그 별의 이름이 개밥바리기별이란다. 비록 작은 빛 하나에 불과하지만 초저녁 하늘을 모두 차지하고 마는 그 찬란한 별의 이름치고는 너무 보잘 것 없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그 별에 ‘개밥바리기별’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니 사실은 별명을 붙여준 것이다. “식구들이 저녁밥을 다 먹고 개가 밥을 줬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서쪽 하늘에 나타난다 해서” 그런 별명이 붙여진 것이다. 찬란한 하루가 저물고, 의미 있는 시간이 다 지나서 세상의 모든 관객들이 다 돌아가고 난 무대 위에 뒤늦게 등장한 배우처럼 쓸쓸하게 떠 있는 그 별을 주목하는 존재는 아직 밥을 얻어먹지 못한 개들뿐이라니!
그러나 이 별이 새벽 동쪽하늘에 나타날 때는 ‘샛별’이라 불린다. 그에게는 찬란하게 빛나는 밝은 미래가 있다. 아니 그가 떠오르는 순간부터 모든 존재의 희망이 떠오르고, 그가 존재함으로써 미래가 존재한다. 하늘에 떠오르는 별들 가운데 가장 밝을 별로 수천 년 인류의 마음속에 언제나 희망의 미래처럼 떠오르는 별, 그래서 그 이름은 ‘샛별’이다. 그것이 본래 그 별의 본질이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개밥바리기별은 더 이상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들이 어떤 별명을 부쳐주었든지 상관없이 그것은 여전히 샛별이다. 그래서 개밥바리기별이란 별명은 이제 쓸쓸하지만 예쁜 이름이 되고 만다. 개밥바라기별 얼마나 예쁘고 다정한가? 개밥바리기별 너는 원래 샛별이란다. 그러니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그대의 이름은 샛별이니까!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는 시몬을 만났다. 벳세다 출신의 어부 시몬은 우직하고 억센 사람이었다. “총명하다”라는 그의 이름은 오히려 놀림감이 되었고 그대로 그의 별명이 되어버렸다. 자신의 이름 때문에 늘 내면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던 시몬에게 어느 날 예수께서 다가오셨다. 그리고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하나 주셨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요 1:42). 게바는 베드로(페트로스, 반석)라는 의미였다. 시몬은 든든한 반석과 같은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예수는 그의 존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을 주심으로써 그가 매우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베드로는 예수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참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존재로 살아간다. 사람들은 드러나는 겉모습으로 우리를 의식하고 평가한다. 우리 존재의 본질과 상관없이 현상만으로 우리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개밥바라기별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우리를 향해 개밥바라기별이라고 지칭하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를 개밥바라기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부끄러워하고 수치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대의 이름은 샛별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우리의 이미지가 더이상 부끄럽지 않게 된다. 오히려 쓸쓸하지만 예쁜 이름이 된다. 우리가 바록 시간의 뒤안길로 쏠리고 몰리는 삶을 살지라도 노여워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런 우리의 모습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일 뿐이다. 나중에 마음의 앨범을 펼쳐보다가 우연히 그 장면에 눈길이 멈추었을 때, 우린 그 한 장의 빛 바랜 기억의 영상 속에서 쓸쓸하지만 예쁜 우리의 과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샛별이요, 게바란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개밥바리기별도 시몬도 더 이상 부끄러워 해야할 이름이 아닌 것이다. 예쁜 이름이 될 뿐이다. 그대의 이름은 샛별이니까!
[출처: 한겨레 희망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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